형, 미애 미니홈피 갔다가 미니룸에 링크된 형 보고 찾아왔어요. :)
참 많이 변했네요. 여러가지가요. (형의 멋진 모습 말고요! ^.^)
참 어리석게도 나는 그게 변할 줄 몰랐나봐요. ㅋㅋ
우선 학회실에 사람들도(?).
늘 학교에 있던 그 사람들이
나는 그냥 그대로 계속 있는 줄로만 착각하고 살았나봐요.
그게 내가 휴가 나와서 학교 학회실에 와서도 잠자코 있었던 이유였던 거 같아요. ^^;
그러고 보면 참 많이 변했어요.
2002년 내가 새내기 소리를 들으면서 야수같은 형 보며
이쁜 선배 누나들 동기들, 서먹했던 03 후배가 생길 때까지는 그게 변하는 것인지 짐작하지를 못했는데
잠시 학교를 떠나 다른 곳을 경험하고 왔더니
모든 게 변해있더라고요.
2년이란 시간이 참 금방 간 거 같은데
그 시간 속에 변한 건 너무나 많았어요. ^^
내가 한결인이라고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말이죠.
시간의 공백 속에서 커다란 딜레마에 잠시간 빠졌었다고 하면 될까.
원래 학회실하곤 친분이 없지만 예전에 알고 지내던 이들을 몇 찾아가봐도 아니면 우연히 스쳐보더라도 별로 친하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괜시리 피하려고만 하는 느낌이 들던 사람도 있었고 - 그것이 물론 저의 속물적 인간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다만 -
물론 그 때 그대로 친한 마음의 사람도 많지만요. 히힛~ (그 사람을 처음 만난 건 학회실이지만 지금 인연의 고리에 엮인 건 또 다른 연이어서겠고요.)
학회실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제가 학교를 다닐 적에 같이 사진을 찍던 사람들 역시
형과 마찬가지로 모두 졸업을 하고 각자의 길로 발을 들여놓고 있었음에
이제는 나 홀로 학교엘 다녀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언제나 처음엔 혼자였다만^^; )
처음 학교에 왔을 때는 (이런 말하면 나 나약하다는 거 광고하는 꼴이긴 하다만) 눈물도 찔끔 나더라고요. ㅎㅎ
그리고 학회실에 새로운 후배라는 사람들을 보면 과연 이 길이 내 길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
군에 있으면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잖아요. 원래가.
그 생각 속에서 나는 다른 길을 찾으려 하고 있나봐요.
2년 후, 내가 어느 자리에 있을지 나 역시도 커다란 혼돈 속에 빠져살지만
그 땐 나 여기가 아니었으면 한다는 생각도 해봐요.
꿈? 그런 거 보다는 뭐. 다시 시작하자?
근데 꼭 여기가 아니여야 할까? 그렇게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 되돌아와보니 여기 이 길은 아니었다고 말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서, 이제 그렇게 되돌아가요.
학교를 떠나가 있던 그 자리로 다시요. 히힛.
어쨌든 그렇게 변했어요.
다시 되돌아와보니 그렇게요. ^^
정리된 생각은 아니지만 이번 2주 동안 겪은 내 경험이었어요.
그럼 형도 좋은 곳에서 돈 많이 버시고 행복하길 바래요.
잘 지내요~!
ps. 형을 보면 대학이 어쩌면 국민학교보다 더 길다는 생각을 해요. *-_-*
어떻게 7년을 그렇게 사람들과 알고 지내세요?
그 터울이 참 넓어서 좋겠어요. 부러워용~^^
밑으로만 7년이지 위로는 또 얼마나 많겠어요.
대학 생활을 10년 한 느낌일 것만 같아요.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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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28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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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은 시(詩)에 능하고, 그림에 비범하고, 학문의 조예가 깊고, 덕행(德行)이 뛰어났으므로 바람직한 여성상의 표본이 되었던 바,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었던 모양이다.
사임당은 중국의 현모양처로 유명했던 주나라 성군 문왕(聖君 文王)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인생의 스승(師)으로 삼고 부덕을 쌓아가면서 율곡을 가르치고자 하였으므로 호를 사임당(師任堂)이라고 지었다 한다.
그 지혜, 그 정성, 그 덕으로 율곡은 어려서부터 예의바르고 영특하여 13세의 어린나이에 과거급제를 하여 주변사람을 감탄케 하였다.
구도 장원공(九度 壯元公)으로 칭송이 자자했던 율곡도 16세의 사춘기에 어머니를 여의고 충격과 슬픔에 잠겨 19세 때는 홀로 금강산에 들어가 1년 간이나 깊은 생각에 잠겨 고뇌의 나날을 보낸 일도 있다.
그러나 하늘같은 어머니를 잃은 슬픔 때문에 인간적인 삶 자체에 회의를 품었던 율곡은 다시 용솟음치듯 새 출발의 길을 스스로 열었으니 그것이 약관 20세의 청년초기였다. 그는 혼탁한 조정과 척박한 민심 때문에 나라와 백성이 맞게될 위기를 구제하려는 큰 뜻을 펼칠 결심을 세우고 먼저 자신을 스스로 깨우치고자 했다.
『자경문(自警文)』이 바로 그것이다. 자경문은 바른길로 가기로 자기를 채찍질하고, 나쁜 길로 갈까봐 자기를 경계하고, 혹 잘못되면 자기를 스스로 질책하는 내용의 결의문이다.
자경문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먼저 뜻을 크게 자져라.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것을 결심하라. 조금이라도 그 경지에 못 미치더라도 끝까지 노력하자"는 의미로 썼다.
이처럼 율곡은 갓 스무살에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을 마음속 깊이 결심했다. 어려운 나라를 바로잡고 고통받는 이웃을 도와주는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을 결심한 청년 율곡은 먼저 인물되기 위한 수련에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는 각오로 실천에 들어갔다.
그 얼마나 청년다운 장한 기상이요, 그 얼마나 지극히 합당한 실천방법이었는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간절한 목표는 반드시 이루어진다. 인생 벽두에 오늘의 우리 청년도 제일 먼저 해야할 중대사는 율곡처럼 큰 뜻을 세우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조선조의 베스트셀러요, 한국 교육학의 고전인 『격몽요결(擊蒙要訣)』은 율곡이 42세때 후손되는 우리들 젊은 청년을 교육하기 위하여 쓴 책이다.
격몽요결 처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청년이 학문을 하려면 먼저 뜻을 크고 곧게 세워야 한다."바로 「초학선수입지(初學先須立志)」다.
인생에서 입지(立志)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뜻이 크고 바르지 못한 인생은 죽은 인생이요, 허송인생이다. 그 인생이 청년이 라면, 더구나 대학생이라면 더더욱 큰 뜻의 인생이어야 하지 않는가. 사람이 가치롭게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큰 뜻을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려고 주야로 분투노력하는 것, 그것이다. 옳고 큰 것을 향해서 분투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리 인생은 기쁨과 성취감, 성공과 행복을 맛볼수 있는 것이며, 꿈과 희망이 환하게 빛나 보이는 것이다.
그러기에 큰 뜻을 세우지 못하고, 옳은 것을 이루기 위해서 고진감래, 분투 노력하지 못하는 인생은 실패의 인생이요, 불행의 인생이 될것이 뻔하다. 율곡은 이처럼 20세에 자경문을 써서 자기 편달, 자기 격려의 기준으로 삼고, 42세에 격몽요결을 써서 다른 청년, 후손 청년에게 참인생, 성공한 인생, 행복한 인생이 될 수 있는 길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몸소 실천하여 보여준 위대한 지도자요, 스승이다.
오늘 이 나라의 각계각층, 특히 정치계와 교육계에 위대한 지도자가 없다고 한탄들이다. 그러기에 지금도 살아서 우리의 어리석은 지도자들을 꾸짖고, 자라나는 우리 청소년, 특히 젊은 청년 대학생에게 큰 희망을 걸며 계시는 듯한 분이 율곡 선생이시다.
율곡은 비록 지금부터 415년전에 가셨다. 그러나 21세기 새로운 미래 사회를 번영의 나라에서 화평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우리는 그분의 지혜와 정열과 덕행을 지금 배워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a href="http://member.hitel.net/~imkyeong/edu/edu307.htm" target="_blank">http://member.hitel.net/~imkyeong/edu/edu307.htm</a>
<a href="http://www.falundafa.org/book/kor/zfl_23.htm" target="_blank">http://www.falundafa.org/book/kor/zfl_23.htm</a>
2004/03/28 03:24